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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8 (월)

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70주년 유엔군 초전기념 및 미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식 개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을 대신해 감사와, 깊은 애도 표해
오산 죽미령 전투,북한군 남침 속도 지연시켜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기여
(사)한미친선문화교류협의회 이인원 사무총장,숭고한 정신 계승 한미동맹 발전바래

 

 

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70주년 유엔군 초전 기념 및 미 스미스 부대 전몰장병 추도식이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에서 개최

 

사람과뉴스= 안근학 기자=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70주년 유엔군 초전 기념 및 미 스미스 부대 전몰장병 추도식이 2023년 7월 5일(수) 오전 10시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에서 개최됐다.

 

이날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추도사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친 스미스 부대 전몰장병들께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을 대신해 감사를 전하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먼저, 이 행사를 위해 멀리 미국에서 오신 스미스 부대 밀러 0 페리(Miller OPerry) 장군, 노먼 포스네스(Norman Fosness) 상병, 보르도 알프레드 C(Bordeux Alfred C) 이병 유족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한미동맹의 출발지인 이곳 오산 죽미령에서 스미스 부대 전몰장병 유족 4분을 모시고 오늘 추도식을 하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대한민국이 누란지위의 위기에 처하자, 유엔은 전 세계 회원국에 '국제평화와 안전보장을 위한 모든 지원'을 권고하는 유엔군 참전결의문을 발표했다.

 

전쟁 발발 10일 만인 7월 5일 유엔의 깃발 아래 최초로 미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가 새벽 빗속을 뚫고 이곳 오산 중미령 일대에 투입되었으며 540명의 부대원들이 6시간이 넘는 치열한 교전을 펼쳤다.

 

이 전투에서 유엔군 181명이 전사 또는 실종되었으나, 북한군에게도 큰 타격을 입혀, 적의 남하를 지연시키고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 의미 있는 전투로 평가되고 있다.

 

무엇보다. 죽미령 전투는 6·25전쟁에서 미군이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피 흘린 첫 번째 전투로서, 한미혈맹 

 

70년의 시발점이라는 데에 그 역사적 의의가 있다.

 

스미스 부대 장병들은 자신의 가장 빛나는 젊음과 가장 소중한 목숨을, 낯선땅, 낯선 나라의 국민을 위해 바쳤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은 스미스 부대 장병들의 용기와 투혼에 경의를 표하며,그 희생을 영원히 가슴에 새기겠다.

 

국가보훈 부는 스미스 부대 장병들을 비롯해 수많은 유엔 참전용사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낸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한미동맹 70년의 역사와 가치를 우리 국민과 미래 세대에게 알리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라며 추도사에서 밝혔다.

 

 

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70주년 유엔군 초전 기념 및 미 스미스 부대 전몰장병 추도식 참가 내빈

 

이어진 추도사는 윌리엄D.행크 데일러 미2사단 연합사단장, 신범철 국방부 차관, 이권재 오산시장, 안민석 국회의원, 순으로 이어졌다.

 

오산 죽미령 전투의 참된 의의를 살펴보면 첫 번째, 북한군의 남침 속도를 지연시켜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북한군은 미군 참전 이전에 전쟁을 끝냈다는 계획하에 남침을 감행하였는데, 10여일 만에 미 지상군이 참전한 사실을 확인하자 UN군과의 전투 대비를 위해 포병 집결과 부대 재편성에 시일을 소비하였다. 

 

포항까지 19일 만에 점령한다는 계획이 무산되고 실제 낙동강 전선에 이르기까지 82일을 소요하였다. 이렇게 얻은 시간 동안 아군과 유엔군은 240km에 달하는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여 북한군의 침략을 저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북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두 번째, 죽미령 전투는 미국을 비롯한 UN 회원국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무력과 원조를 이끌어냈다. 미 지상군의 투입만으로 북한군의 남침이 중단될 것이라 판단한 맥아더의 판단에 죽미령 전투는 큰 충격을 주었고 미국과 전 세계는 전 쟁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맥아더는 7월 7일에 4개 사단의 추가 파병 요청하였고 트루먼 대통령은 7월 19일 의회연설을 통해 추가적인 병력, 장비, 물자,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유엔도 7월 7일 제84호 결의문을 통해 모든 무력과 기타 원조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여 6·25전쟁 기간 동안 48만 명의 유엔군이 파견되었다.

 

세 번째, 한국군과 UN군 간 공동작전의 시발점이 되었다. 스미스 부대가 참전함에 따라 한·미 간 연합전선이 형성되었고 죽미령 전투에 있어 미군은 경부국도를 포함한 서부지역의 지연 작전을 맡고, 국군은 그 동쪽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스미스 부대가 죽미령에 진지를 구축하자 국군 제17연대도 스미스 부대 중 포병부대를 지원할 수 있는 오산 갈곶리에서 작전을 수행하였다. 큰 범위 안에서 죽미령 전투는 처치 준장과 국군에 의해 계획된 지연 작전의 한 부분이었으며, 연합작전의 시작점이 되었다. 

 

이후 미 제34연대가 평택, 안성에 진지를 구축하고 전투를 준비하자 국군 제 1개군 단의 3개 사단이 진천, 음성, 증평으로 투입되어 연합전선의 골격을 형성하였다.

 

네 번째, 스미스 부대는 영원한 한미동맹의 상징이 되었다. 미국은 6·25전쟁 발발 10일 만에 지상군 전투 부대를 파병해 북한군으로부터 한국을 지켰다. 

 

스미스 중령도 1981년 12월 7일에 남긴 회고문에 “죽미령 전투는 미국이 싸워 보지도 않고 우방과 동맹국이 파멸하도록 결코 방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고하는데 기여하였다." 라고 기술하였다. 위 내용을 통해 우리는 미국과 한국은 전쟁을불사할 정도의 견고한 동맹국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사단법인 한미친선문화교류협의회(KAPA)  이인원 사무총장(오른쪽)

 

이날 행사에 참여한  사단법인 한미친선문화교류협의회(KAPA)  이인원 사무총장은 한미동맹 강화를 목적으로 창립한 저희 단체는 주한미군과의 교류 활동을 통하여 학생들과 자원봉사 활동을 통한 어학연수,고아원 방문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 하면서,민간 외교의 중요성을 체감하면서 선봉장이  되었다.

 

이미 고령으로 참가가 어려운 고귀하고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여 한미 동맹의 안보 동맹에서 나아가 기술 동맹을 뛰어넘어 국제사회에서 가치 동맹으로 발전을 기원하며 지속적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아가길 바란다.라고 참가 소감을 밝혔다.

 

이어진 헌화에는 많은 단체와 참가자가 헌화에 동참 했으며 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70주년 유엔군 초전 기념 및 미 스미스 부대 전몰 장병 추도식이 기념 공연과 함께 성대하게 마쳤다.

 

사람과뉴스=안근학 기자 기사제보 coda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