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詩] 이번 호는 이병률 시인의 시집 '찬란(2017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밑줄'을 함께 읽기로 했습니다. 이병률 시인은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습니다.
밑줄 - 이병률
역전 식당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한 여자가 합석을 했습니다
주문을 하고 눈 둘 곳 없어 신문을 가져다 들추었습니다
시킨 밥이 나란히 각자 앞에 놓이고
종업원은 동행인 줄 알았는지 반찬을 한 벌만 가져다주었습니다
벌 한 마리 안으로 들어오려는 건지
도리가 없는 건지 창문 망에 자꾸 부딪혔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도 그릇에 불안을 비비는 소리를 냈을까요
새로 들여놓은 가구처럼 서름서름 마음을 설쳤을까요
배를 채우는 일은
뜻밖의 밑줄들을 지우는 일이겠습니다만
식사를 마칠 때까지
여자도 나도 반찬 그릇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