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덕재무장 운동의 실천 방향 -(3부) 이 세재 전) 청북초등학교장. 논설위원 및 칼럼니스트. 평택서부노인복지관 운영위원장. 세계도덕재무장 한국 본부 협력이사.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고, 역사와 전통이 있는 조직은 사라질 수 없다. 집단의 조직과 민족의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가의 정책이나 사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가슴에 공감성이 있어 저변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공감성의 내용에는 여러 사람이 똑같은 생각에 동조하면서, 가슴으로 느끼는 심정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이 바로 종교적인 이념이고 사상이다. 그러기에 성경과 불경은 지금까지 내 가슴에 박혀 있고, 이념은 머릿속에 뇌까리고 있다. 우리가 주장하는 “세계 도덕재무장 운동(MRA운동)”의 현실은 어떠한가? 역사와 전통은 있으나 현실성이 떨어지고, 공감성은 있으나 일반화 대중화가 안 되어, 새 장에 갇혀 날지 못하는 새가 된 현실이다.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나라 MRA의 활동 조직원 수는 얼마나 될까? 너무나도 미약한 수준에, 각 시· 군· 구의 지방조직이 없는 실정이다. 기초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뿌리가 미약하여 저변 확대가 안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한국 도덕재무장 운동이 걸어온 발자취 -(2부) 이 세재 전) 청북초등학교장. 논설위원 및 칼럼니스트. 평택서부노인복지관 운영위원장. 세계도덕재무장 한국 본부 협력이사. 우리나라는 1950년 6월 한국전쟁 이후, 사회적 혼란과 도덕적 위기 속에서, 서구의 MRA 활동가들이 우리나라에 방문하여 운동을 소개하고 전개하였다. 특히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민 도덕성 회복과 사회 통합을 강조하면서, 일부 기독교의 종교인들과, 교육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확산 보급되었다. 초대 총재로서 ‘정 준’ 목사님의 노력과 헌신 봉사가 매우 컸다. 당시의 주요 활동으로서는 첫째, 청년 운동을 전개하였다. 대학생과 청년층을 대상으로 도덕적 재무장과 리더십 교육을 실천하고, “정직· 순결· 무사심· 사랑”의 4대 가치와 이념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둘째, 사회 계몽 활동을 전개하였다. 연극· 음악· 강연을 통해 도덕 재무장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부패 척결· 근로 의식의 고취· 가정 윤리의 강화 등을 주제로 하는 문화계몽 활동을 전개하였다. 셋째,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였다. 1960~70년대에는 일부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들이 참여하여, 부정부패의 청산과 사회개혁
이 세재 전) 청북초등학교장. 논설위원 및 칼럼니스트. 평택서부노인복지관 운영위원장. 세계도덕재무장 한국 본부 협력이사. 세계 도덕재무장 운동을(MRA) 아시나요? -(1부) 세계 도덕 재무장운동(世界 道德 再武裝運動, Moral Re-Armament,MRA)은 세계 제2차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38년 6월 4일 영국의 런던에서 발족하였다. 인종· 민족· 종교· 계급· 정파를 초월하여 “새로운 세계의 창조” 라는 공통된 슬로건 아래에서, 인간성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은 세계적인 도덕성 운동이다. 창시자로서는 미국의 펜실바니아주의 피츠버어크에서 태어난, ‘프랭크 북맨’ (Frank N. D. Buchman, 1878~1961) 박사이다. 세계 제2차대전 당시의 전쟁과 사회 갈등을 극복하고,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이루기 위하여, 개인과 기업· 정치권이 서로가 “도덕적인 무장”을 해야 한다는 사상에서 출발하였다. 본 조직의 배경을 살펴보면 1930년대 후반경, 유럽은 파시즘(fascism)과 공산주의 및 제국주의 대립에서 전쟁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이때 ‘프랭크 뷰크만’은 “인류가 군사적인 무장이 아니라, 도덕적· 정신적인 무장을 통해서만이, 전쟁의 위기를